물과 공기가 깨끗하다는 것의 의미

2018년에서 2019년으로 넘어오는 겨울의 가장 추운 날을 보냈다. 이제 한반도의 겨울은 삼한사온이 아니라 삼한사먼으로 이루어져 있다. 24절기는 신기하게 잘 맞는다며 자연의 이치와 선조들의 지혜에 주기적으로 감탄하는데, 오늘 역시 매우 춥고 청명했다. 며칠 추워도 곧 찾아올 온기를 기다리면서 겨울을 났는데, 앞으로는 오히려 추위를 반가워하게 될 것 같다. 이번주에는 상대적으로 따뜻한 주기의 나흘이 사상 최악의 미세먼니 농도로 여태 살면서 별다른 피부 트러블이 없던 나도 극한의 피부 뒤집어짐을 겪었다. 마스크를 써도 이마를 가릴 수는 없으니까.
지금까지와 스케일이 다른 오염된 공기를 겪고 있으니 물과 공기가 맑은 정도가 동화같이 비현실적이던 스위스가 떠올랐다. 스위스 여행을 하는 동안 다섯 개 도시를 거쳤는데, 도시마다 물의 색과 질감이 같지 않았다. 크지 않은 나라였지만 산이 많다보니 그 틈새에 호수가 많았고, 대륙의 한 가운데에 있다보니 큰 강이 국토를 관통하게 되어 도시마다 다른 물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 물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바로 떠서 마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수돗물 뿐만 아니라 강물이나 호숫물도 떠서 마셔도 될 정도로 투명했다. 관광객이 많았던 루체른에서는 배를 타고 호수 중간으로 나갔을 때 간혹 쓰레기를 몇 조각 보긴 했지만, 그 외에는 백조가 있으면 물속에 있는 발이 훤히 보일 정도로 깨끗했다. 공기도 깨끗했다.
물과 공기가 깨끗한 삶이란 무엇일까? 미세먼지 일보를 검색하지 않아도 되고, 마스크를 안써도 되고, 공기청정기를 사지 않아도 된다. 생수를 주문해야 해서 배달이 가능한 가격을 맞추느라 1+1 라면을 장바구니에 담지 않아도 되고, 생수통이 여러개 생기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필터형 주전자를 구매하거나 물을 끓여 마시지 않아도 된다. 정수기를 놓느라 장기 임대 계약을 맺지 않아도 되고, 생수병 나르기 알바도 필요 없다.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마음껏 시켜도 되고, 스타일러가 없어도 외투를 쾌적하게 유지할 수 있다. 물은 수돗물을 받아 마시면 되니 냉장고 선반에 물병 놓을 자리를 만들어두지 않아도 된다. 조금 다르게 마시고 싶다면, 화단에서 울창하게 자란 민트 가지를 하나 꺾어 수돗물에 담궜다가 마시면 된다. 이제 삼한사먼의 나라에서는 꿈같은 장면이 이 여행의 마지막 도시였던 취리히의 호수는 따뜻하고 반짝였다. 숙소는 호수를 가운데 두고 르꼬르뷔지에 파빌리온 건너편에 있었다. 파빌리온 뒤에는 취리히 공대가 있었다. 취리히는 루시드폴의 책에서 독일어 방송도 듣기 싫어하게 될 정도로 차갑고 딱딱한 도시로 묘사되어 있어서 출국 전에 도장깨기 용으로 들린다는 마음으로 입성했는데, 여름날의 호숫가에는 역시나 볕과 맑은 물을 즐기는 사람들이 즐비했다. 도심 한복판을 흐르는 강가에 내려가서 발을 담글 수 있는 계단도 있었다. 플라스틱 슬리퍼를 신고 다니던 중이라 기회만 있으면 직접 발로 물의 온도를 느껴보았다. 투명하고 차다. 물에 담근 내 발도 보이고 멀지 않은 거리에서 눈을 맞추고 있던 백조의 바쁜 물갈퀴도 보였다.
호수에서는 낮에는 사람들이 요트를 탔고, 밤에는 서커스를 동반한 연극 축제가 열렸다. 찰팍거리는 물가 잔디밭에 털썩 주저앉아 코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는 배우들을 구경했다. 취리히에서 조금 더 동쪽으로 가서 정말로 바다같이 넓고 이름도 그러한 Bodensee에도 가보고 싶었지만, 일정상 무리여서 가보지 모했던 점이 아쉽다. 이 곳에서는 매년 호수를 배경으로 놓인 무대위에서 연극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큰 호수를 본적이 없었다. 섬에서 반평생, 서울에서 반생을 보내고 있어서 바다와 흐르는 강에는 익숙하다. 흐르지 않은 넓고 깊은 민물은 낯설었다.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고 짜거운 바닷물보다 맑고 깊은 물이 주는 안정감과 평화로움이 마음에 들었다.
레만호의 따뜻함은 루시드폴의 책과 르꼬르뷔지에 어머니댁을 소개한 글에서 익히 접했다. 한여름 푸른 들판을 따라 호수를 반바퀴 도는 기차에서 병풍같은 알프스를 뒤로한 처음 보는 거대한 호수의 모습을 보게 되니 지금까지 보았던 스위스 관광 엽서가 진짜라는 생각이 들어 신기할 뿐 그 외의 잡념이 사라졌다. 기차로만 지나가서 아쉬웠지만, 날이 따뜻할 때 레만호에서 수영을 해보면 정말 좋을 것 같다. 부모님 댁을 이런 곳에 지었다니, 각박한 감성을 가진 그의 작품세계를 좋아하지 않지만 효심을 엿보고 나니 왠지 머쓱해졌다.
베른의 강은 에메랄드색이었고, 빨간지붕 구도심을 굽이굽이 휘감으며 빠른 속도로 넘칠듯이 흘렀다. 한강은 강폭이 워낙 넓고, 폭이 좁은 파리의 센강이나 네덜란드의 운하를 보면서도 물이 빠르게 흐른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어서 이렇게 콸콸 흐르는 물은 처음 보게되어 신기했다. 강을 따라 걷다보면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갈 것 같다. 크고 느리게 흐르는 강이 있는 도시에 살다가 좁고 빠른 물을 보게되지 새삼 지구의 지리적 다양성을 실감했다.
바젤에는 넓고 푸르고 느리게 흐르는 강이 있었다. 일요일 오후에 도착해서 짐을 풀자마자 어디부터 가면 좋겠냐고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질문하니 강의 북쪽 산택로를 따라 걸으며 남쪽을 바라보라는 조언을 했다. 뜨거운 여름 해가 내려앉는 강변 키큰 나무가 만든 그늘을 따라 걸었다. 강에서 큰 볼을 안고 동동 떠 있기도 하고, 썰매타듯 그 볼을 잡고 천천히 떠내려가며 주말의 끝자락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켠에서는 틈틈이 바비큐도 열리고, 그 길을 따라 줄지어 있는 음식점에서는 한가롭게 맥주와 와인이 오고 갔다. 삶의 질이 높은 도시의 스냅샷이었다. 하지만, 이 강도 한때 화학약품에 오염되어 고초를 겪던 시기가 있었고, 강을 공유하는 인근국가들이 힘을 모아 수질을 개선한 끝에 지금은 수영도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모습을 먼저 보고서는 상상할 수 없는 어두운 과거의 존재에 놀랐지만, 시간이 지나면 개선할 수 있는게 물의 흐르는 속성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용기가 났다. 이 강을 다른 시간 다른 도시에서 만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본다. 나의 시간은 그동안 잘 흐르고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바젤에서 루체른으로 기차를 타고 가면서 창밖으로 드문드문 호숫가에 알록달록한 매트를 펼쳐놓고 물에 첨벙첨벙 뛰어드는 사람들을 보았다. 정말 많았다. 다리를 다쳐서 물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되고보니 더 부러워졌다.
장누벨 디자인인 루체른 콘서트홀 KKL은 호수에 면해있다. 상층부에 테라스가 있는데, 거대한 지붕이 형성하는 가로로 긴 시야에 호수 풍경이 가득했다. 호수에 면한 대형 건물인 만큼 다양한 프레임을 제공해서 호수를 포함한 뷰를 경험할 수 있게 배려한 공간이었다. 온갖 관광객이 몰려있는 여름 페스티벌 기간이어서인지 강과 호수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특히 본격 단체 관광객이 많은 도시였는데, 히잡을 두른 동남아시아나 중동 여인들이 물가에 내려가서 물을 직접 만져보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 중동은 담수가 전기보다 비싼 곳이다. 그곳에서 온 사람들에게 맑은 물이 이렇게 아무렇게나 많은 모습은 생경할 것이다. 수돗물을 그냥 마시고 집에 공기 청정기가 없는 모습은 나도 신기했는데, 그 격차가 더 크니 그들의 여행은 생각할 거리를 더 많이 남기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한 때 사막에 무척 가보고 싶었는데, 나는 물이 풍부한 환경이 더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산 위의 물은 다소 극단적이었다. 한여름이었는데 빙하가 있었다.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얼음이 아래쪽에서는 녹아내려 부스러지는 석회암 산길을 따라 계곡을 이루며 흘러 산 중턱에 에메랄드 빛으로 고여있었다. 정신없이 산을 오르다 미끄러져 구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그 물을 바라보니 참 작았다. 내가 지나온 길 위에 있는 사람들도 손톱만해보였다. 아마 굴러서 가속도를 받은채 그 호수 가까이 도달했다면 아주 깊이 푹 빠져 수면위로 올라오지 못할 것 같았다. 등뒤에 큰 호수가 있다고 생각하니 죽을 힘을 다해 산을 오를 수 있었다.
도시의 거대한 호수는 아니었지만, 조난의 밤 머물렀던 산위의 작은 호수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 호수의 물을 떠서 라면을 끓이려던 원대한 계획이 있었지만, 불을 피우지 못해 물만 마셨다. 하지만 이 물이 없었다면 탈수증상을 겪던 내가 알프스 고산지대를 탈출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전날 밤에 물이 부족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조난 익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폭우를 맞으며 고개를 넘었다. 쉬지않고 물에 젖어있으니 체온이 내려갔다. 멀리서 꾸르릉거리며 산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안내 책자에서는 얕은 개울을 폴짝폴짝 건너고 있었는데, 폭우속에 만난 개울은 콸콸 강이되어 거대한 바위만 남긴채 일대를 다 덮어버렸다.
체르마트에서 산악열차를 타고 고르나그라트에 올라가던 날에는 폭설이 와서 열차가 다가서다 했다. 한여름에 눈이 펑펑 오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스위스 관광청 홈페이지 사진을 보면 체르마트에서도 트레킹을 할 수 있고, 투명한 호수에 비친 마테호른을 바라보는 시선을 볼 수 있었는데, 우리의 산악열차 창 밖에는 꽁꽁 얼어서 눈인지 얼음인지 알 수 없는 불투명 유리그릇같은 연못이 있을 뿐이었다. 내려오는 길에 독일어로 된 스위스 보험회사 광고를 보았다. 스키장에서 부상을 입어서 화장실에서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사진을 놓고 미리 보험을 들어두라는 메세지를 전하는 광고였는데, 독일어 사전을 검색하면서 ‘사고’ 라는 뜻의 Unfall 을 산악인에게 알려줬다. 꽁꽁 얼어붙은 풍경에 제법 잘 어울리는 광고였다.
이 여행의 마지막 도시였던 취리히의 호수는 따뜻하고 반짝였다. 숙소는 호수를 가운데 두고 르꼬르뷔지에 파빌리온 건너편에 있었다. 파빌리온 뒤에는 취리히 공대가 있었다. 취리히는 루시드폴의 책에서 독일어 방송도 듣기 싫어하게 될 정도로 차갑고 딱딱한 도시로 묘사되어 있어서 출국 전에 도장깨기 용으로 들린다는 마음으로 입성했는데, 여름날의 호숫가에는 역시나 볕과 맑은 물을 즐기는 사람들이 즐비했다. 도심 한복판을 흐르는 강가에 내려가서 발을 담글 수 있는 계단도 있었다. 플라스틱 슬리퍼를 신고 다니던 중이라 기회만 있으면 직접 발로 물의 온도를 느껴보았다. 투명하고 차다. 물에 담근 내 발도 보이고 멀지 않은 거리에서 눈을 맞추고 있던 백조의 바쁜 물갈퀴도 보였다.
호수에서는 낮에는 사람들이 요트를 탔고, 밤에는 서커스를 동반한 연극 축제가 열렸다. 찰팍거리는 물가 잔디밭에 털썩 주저앉아 코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는 배우들을 구경했다. 취리히에서 조금 더 동쪽으로 가서 정말로 바다같이 넓고 이름도 그러한 Bodensee에도 가보고 싶었지만, 일정상 무리여서 가보지 모했던 점이 아쉽다. 이 곳에서는 매년 호수를 배경으로 놓인 무대위에서 연극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큰 호수를 본적이 없었다. 섬에서 반평생, 서울에서 반생을 보내고 있어서 바다와 흐르는 강에는 익숙하다. 흐르지 않은 넓고 깊은 민물은 낯설었다.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고 짜거운 바닷물보다 맑고 깊은 물이 주는 안정감과 평화로움이 마음에 들었다.
여행 마지막 날의 해가 지고 있었다. (끝)